거인처럼 보이는 인간, 실제보다 몇 배나 크게 확대된 야채, 해산물과 그 외 다른 종류의 물건들의 평범하지 않은 결합을 주종으로 하는 토마스 엘러의 작품들. 그것은 단순한 평면적 이미지의 사진이라기보다는 평면도 입체도 아닌 상태로 3차원의 공간 속에 존재한다.
작품의 이미지들을 액자라는 제한된 장소에서 해방시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이미지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토마스 엘러의 작품들은 컴퓨터로 조작되고 원래의 배경으로부터 잘려 나왔기에 그 형상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객관성을 잃고 회화의 주관적 특성을 띠게 된다.
또한 그가 작품을 전시장에 배치하는 방법은 회화에서 구도를 잡는 방법과 흡사한데, 관람자는 이러한 3차원적 공간 속에서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공간 경험을 하는 능동적 존재가 된다.

토마스 엘러는 미술사적 연구에 기반을 두고 과거 유명한 작품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곤 했다. 그 중에는 뒤러의 Großes Rasenst?ck 이나 15세기에 만들어진 작가 미상의 천사장 미하엘의 동상, 혹은 워홀의 Campbell Soup 캔 등이 있다. 작가는 이들 회화나 조각을 있는 그대로의 사진에 담기보다는 그 속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발견하여 끄집어내는데 그가 찍은 자화상 사진에 담긴 작가의 모습이 천사장 미하엘을 연상케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토마스 엘러의 최신작들은 광고전략을 생각하게 한다. 이 이미지들은 크기면에서도 신경에 거슬릴 뿐만 아니라 뿌리치기 어려우면서도 때로는 황당한 방법으로 선보여진다. 돈, 비타민, 썩지 않는 음식,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자극 혹은 성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넘쳐난다.
엘러의 또 다른 '전략' 은 'THE' 라는 이니셜을 광고 문구처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편재(遍在) 함을 작품 속에서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구의 역할을 한다. 비록 THE 라는 이니셜이 Thomas Eller 의 영문 이니셜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영어의 정관사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토마스 엘러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관객 앞에 불쑥 방해꾼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미지 속 물체들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사진으로 찍어냈기 때문에 이 물체들을 한 데 모아 놓았을 때 시각적 혼돈이 야기된다.
그 결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일상의 것들이 토마스 엘러의 작품을 통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미지 속의 물체들은 같은 종류의 것끼리 모아놓지 않고서는, 혹은 그 사진의 배경적 해석이 없고서는 단지 하나의 상징이 되고 공간속의 유령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이 형상들은 정체불명의 추상적 물체로 남게 된다.

이러한 경험 끝에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현실도 상상도 아닌 중립의 입장에 선 공간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온갖 이미지들과 정보,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사회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점들은 하나의 정해진 투시법이나 이상적인 관점 혹은 '우리가 보는 것은 누구/무엇인가' 에 대한 확정된 답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토마스 엘러의 작품은 '자극전략'을 이용해 흥미로움과 혼란스러움을 선사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복잡한 인식론적, 철학적 질문들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사비나 루스 (Sabine Ru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