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유혹

마커스 웨겐맨 작품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라보고 있으면 동시에 서로 다른 감정이 교차되는 하이-글로스(high-gloss: 고광택) 대형 회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화려한 색을 통해 넓게 전달되는 웨겐맨 작품의 강렬한 첫인상은 관능적으로 다가오지만, 고광택 처리된 표면을 통해 모두의 시선이 동일하게 반사되어 보이는 관람객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웨겐맨의 작품에서는 절제미와 동시에 매혹적이면서도 차가운 에로티시즘 또한 느껴진다. 마치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레네 디트리히 같은 아름다운 헐리우드 여배우들은 언제든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뜨거운 매력은 경험할 수 없는 욕망과 절망의 대상이듯, 마커스 웨겐맨 작품도 보이는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없는 뜨겁고도 차가운 분리성의 유혹을 지닌 대상이 된다.

웨겐맨 작품의 완벽하게 마무리된 반짝이는 표면 뒤에 숨겨진 욕망을 읽어낼 단서는 발견할 수 없다.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해 신비감까지 느껴지는 작품 표면에서는 어떠한 불규칙성도 보이지 않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 발견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즉, 웨겐맨의 작품은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WYSIWYG)”라는 컴퓨터 용어의 전형적인 회화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엔 신비로움도, 어떠한 내재적 의미도, 의미론적인 깊이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의미심장한 독일 미술에 대해 세계미술시장이 갖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색 자체만으로 작품에 존재성을 부여해 강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웨겐맨은 개념미술가가 아닌 관능주의자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차지하고 있는 유기적 형태의 색 덩어리들은 작가의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만이 아닌 면을 지배하는 자발적이고도 강제적인 요소라고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이는 웨겐맨이 1999년 이후로 작업해 온 하이-글로스, 스프레이 페인팅 작품들에 해당된다. 알루미늄 판 위에 금속이나 합성 진주를 미세하게 첨가한 산업용 특수 페인트로 작업하여 한 겹, 한 겹 광택처리를 할 때마다 널찍이 자리잡은 강렬한 색들은 방향성과 운동성을 모두 잃고 멈춰 작품의 존재성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미적 완벽함도 갖추게 한다. 최근작들은 이러한 복잡한 작업 과정 속에서 얻어진 색의 순수한 자기지시성(self-referentiality)으로 특징지어 진다.

그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웨겐맨의 작품이 상상, 동경의 보고 혹은 감정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음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웨겐맨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反 로스코적 (anti-Rothko)” 이라고 평가하듯, 독립적이고 자급적인 그의 작품은 시적인 색 면을 구사하는 로스코 작품의 정신에 정반대가 아닐 수 없다.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기에 시각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로스코의 색의 공간은 로젠블룸 이후로 정립된 낭만주의의 시각적 접근법으로 읽혀지고 이는 웨겐맨의 작품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웨겐맨 작품에서 보여지는 여러 겹의 깊이감은 화려한 색으로 채워진 공간 속 다양한 과정과 색의 움직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눈부신 색상의 단편적이자 절대적 존재감을 일깨워 준다.

전체적인 구성이 이 과정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겹겹이 느껴지는 효과는 의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웨겐맨은 그의 그림이 즉각적인 효과를 일으키길 원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색의 표현법 및 변형된 화법과 같은 화가로서의 세밀한 수작업을 피함으로써 작품의 수용력을 과감히 줄였기 때문이다. 적은 양의 수작업과 많은 기술적인 부분이 그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함께 하기에 그의 작품은 회화의 따뜻함과 함께 기계적인 차가움 또한 느껴지는 새로운 혼성의 시각예술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이 점이 웨겐맨의 작품을 진정 현대적이게 만드는 점이다. 그는 다소 진부한 논쟁이 될 수 있는 ‘뜨거운’ 감각적인 회화 혹은 ‘차가운’ 진보된 컴퓨터 작업으로 이뤄진 미디어 아트 가운데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다. 웨겐맨의 따뜻하고도 차가운 회화는 정반대의 성격을 교묘히 교차시켜 이러한 논쟁을 넘어선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한다. 웨겐맨은 작가의 사인 없이도 작품 각각의 고유성을 보장한다. 그의 작품은 색과 형태의 상호작용 그 자체로 각각의 개별성을 갖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 슈라이어 박사, 독일 본 미술관(Kunstmuseum Bonn) 부관장
번역: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