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nversation Between Ian Dunlop and Brian McKee

Q : 이번 새로운 신작 시리즈의 타이틀을 "Urbanus"로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 "URBANUS"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도시'에 관련된 여러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도시의, 도시에 관한" 이라는 뜻이지만 종교적 활동에서 파생된 의미 또한 지니고 있지요. 오래 전, "이교도"들은 변두리 지역에, "도시인"들은 보다 시스템화 된 종교적 사회에 거주하는 이들로 인식되었으니까요. "Urbanus" 프로젝트를 위하여 찍은 장소들은 모두 한 때 15년에서부터 200년까지 지속된 독립적인 도시들이었습니다만,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와해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었겠지만, 결국 저는 인류역사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되며 무너진 모든 사회에 대한 비유로 봅니다.


Q : 이번 시리즈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 번 "Detritus" 시리즈와는 어떤 연관성을 갖나요?
A : 제가 작업하는 방식에 저의 작업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컨셉을 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 그 컨셉을 묘사하기 위해 세 가지 큰 틀을 설정합니다. 이번 경우, 그 첫 번째가 아프가니스탄을 소재로 한 "Detritus" (잔해)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정치적 투쟁과 전쟁 그리고 국제적 논쟁 등으로 오늘날 붕괴 위기에 놓인 한 사회입니다. 종국에는 잔해로 남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지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이미지들에는 모두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라도 사람들은 그 폭파된 잔해 속에서 문화와 버려진 사회에 대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것은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사실들입니다. 하지만 나의 의도는 절대 "이게 바로 아프가니스탄 혹은 인도의 모습입니다." "여기 있는 것들이 바로 빌딩입니다" 라고 관객을 향해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시리즈의 타이틀이 내가 작업한 나라들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오랜 역사에 걸쳐 존재했던 수 많은 사회들을 반영할 수 있는 보다 큰 의미의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항상 내 작업이 그 소재와는 상관이 없이 일상 생활에서 잡지나 신문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처럼 단순한 기록 사진이 되지 않도록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내가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생명력을 지니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Urbanus" 시리즈는 오래된 도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나의 전작처럼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파헤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 원래 풍경보다는 건축물에 관심이 있습니까?
A : 풍경보다는 건축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제가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 풍경이라는 것도 정의하고 또 표현하기 나름이겠지만요. 하지만 당분간 저의 초점은 주로 건축물의 내부를 향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남기는 것이 결국 작게는 건축에서부터 크게는 도시 전체이니까요. 저의 작품들은 또 조금 큰 편입니다. 대개 146 x 181 cm인데 관객이 가능한 한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게끔 유리나 프레임 없이 선보입니다. 실제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이미지들이 엄청나게 커지니까요.


Q : 당신의 사진들은 건축물에 얹혀지는 세월의 영향에 관한 것인가요 아니면 오랜 세월 전 일어난 문화적 변화에 대한 것인가요?
A : 저의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Detritus"가 시간에 관한 것이었듯이 "Urbanus"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건축물도 시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만들어 낸 이가 오래 전에 사라진 후 남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뉴욕 Brooklyn의 1894년에 지어진 빌딩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 건물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제가 작업실 겸 거주용으로 쓰고 있는 꼭대기 층은 한 때 Brooklyn 부두의 공장에서 매일 힘겨운 노동을 하던 인부들이 살던 세 채의 아파트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공간이 분할되기도 하고 재건축되기도 하면서 여러 번 지어지고 또 지어졌습니다. 지금 있는 한 문을 따라가보면 벽이 나옵니다. 가짜 벽이 있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 자리 잡은 창문도 있지요. 저는 이러한 것들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낸 과거의 흔적으로 보기를 즐깁니다. 이렇듯, 500년 된 건축물 내부에서도 혹은 10년 된 곳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여전히 시간과 역사에 관한 문제를 염두에 둘 수 있는 것입니다.


Q :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소재를 찾을 수 있나요? 아니면 유난히 먼 이국을 여행하기를 좋아합니까?
A : 이곳 미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작한 초기 작품들은 과거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었지만 현재는 그 사실과 전혀 연관이 없는 장소들을 다루었습니다. 여행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제가 하고 있던 작업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또 절대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행하기 전에 4~6개월 가량 조사를 합니다.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정확히 알고 있지요. 대개의 경우, 그 장소가 어떨지도 미리 압니다. 모든 것을 사전에 꼼꼼히 계획합니다.


Q : 당신의 사진들이 특정 지역을 보여주는 것들이 아니라 좋았습니다. 또 단순한 여행 사진도 아니었지요. 하지만 확실히 인도 혹은 아시아 특유의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인도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던가요? 이슬람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A : 제가 처음 "Detritus"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이슬람 문화 그 자체에는 강한 끌림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부분은 강력한 이슬람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관련이 있었지만 건축물들은 거의 대부분 유럽 스타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때부터 이슬람 건축 양식에 반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여전히 주제는 건축 양식이 아닙니다.


Q : 이슬람 건축의 대칭 미에 매력을 느끼시나 요?
A : 제가 이슬람 식 대칭 미에 대해 좋아하는 점은 그것이 서구식 사고방식에서 생각하는 대칭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공간을 보고 느끼지요.


Q : 스스로에게 '로맨틱'한 감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쪽인가요?
A : 제 자신을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공간도 그렇지 않은 곳도 찍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전체적으로 좋은 구성을 보이는 사진을 만들려고 애씁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느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로맨틱한 감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나의 컨셉을 완성시킬 이미지들을 구하기 위해 특정한 장소에 있어야만 할 뿐입니다. 접근 방법에 있어서 스스로 매우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의 모든 이미지 안에 공간 전체를 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제 머리 속에 상상하던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자연광이 공간 속에 스며들기를 기다리지요. 이러한 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진이고 그러한 방식이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Q : 당신은 큰 PLATE CAMERA를 삼각대위에 올려 놓고 작업하기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다른 기종의 카메라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기능이 있나요?
A : 네. 저는 1950년 산 8 x 10 인치 Deardorff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 놓고 작업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유일한 카메라인데 다른 어떤 기종도 이 정도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과 view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카메라의 기종은 무수히 많지만 사진가 들은 대부분 자기에게 맞는 카메라를 선택하여 그 한 가지만으로 꾸준히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에게 있어서는 이 8 x 10 인치가 제가 다루는 이미지들과 잘 맞습니다. Ground glass를 통해 구도를 잡으면서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8 x 10인치를 통해서만 제가 찍는 공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요. 천천히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대략 10분에서 25분 정도가 걸립니다. 이 정도의 속도가 좋습니다. 이미지를 이리저리 다루어 보며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음미하고 사진 작품으로 재 탄생시킬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기 때문이지요. 이 카메라는 저의 스승이었던 Stephen Shore가 권했습니다. 아마 8 x 10 인치 컬러 포맷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첫 번째 미국 작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처음 사용해 보던 순간 제가 원하던 작업 방식과 맞는다는 것을 알았지요.


Q : 디지털 사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디지털 사진은 사진에서 나름대로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저의 작업에는 응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디지털이고 무엇이 아니냐 하는 디지털에 관한 개념은 너무 넓어 모든 요소들을 전부 다루기란 쉽지 않습니다. Stephen Shore 역시 이제는 옛 아날로그 이미지들을 전부 디지털로 인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사진일까요? Gursky 나 Struth 역시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저도 디지털 인화 방식을 이용해 여러 다양한 결과를 얻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작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Q : 당신의 작업에 있어서 자연광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어두운 곳을 촬영할 때에 조명을 사용하나요?
A : 자연광은 저에게 있어서 전부와도 같습니다. 화가에게 물감이 그러하듯 말이지요. 원하던 빛이 정확히 그 시점, 그 지점에 제대로 떨어지기를 몇 시간이고 기다립니다. 저는 절대로 인공 조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작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점이지요.


Q : 매 컷을 위해 어떻게 설치 준비를 하나요?
A : 매우 천천히 진행합니다. 제가 다루는 건축물은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빛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 일단 장소에 아무런 장비 없이 가봅니다. 그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무엇을 이미지로 삼을지 결정하지요. 다른 작가들처럼, 저는 여러 앵글에서 수 많은 사진을 찍어 스튜디오로 가져가 인화된 사진을 편집하지 않고 현장에서 머리 속으로 편집을 합니다. 각 로케이션마다 한 컷씩만 찍고 촬영 횟수도 많지 않습니다. 6주간 인도에서 작업 했을 때, 90컷 밖에 찍지 않았고 마지막 프로젝트에 사용할 것은 그 중 33점 입니다.


Q : 대칭 구도를 좋아합니까?
A : 제가 작업하는 방식처럼 저는 그 공간이 스스로 말하게끔 합니다. 저의 많은 이미지들이 중앙을 기점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보이지만 자세히 보게 되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확히 정 중앙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항상 무언가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고 초점도 정확히 중앙에 있지 않지요. 이유는 그 공간은 그렇게 보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 완벽 대칭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전체적으로 인식하지요. 저는 관객이 실제로 현장에서 그 공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가능한 가까이,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화가는 원하는 장소에 이젤과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예전에는 "이상적인" 구도를 위하여 사실적이지 않아도 그 방식을 채택했지만 저는 가능한 "사실적"으로 작업하기를 고수합니다. 그러면서도 꽉 차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미리 구도를 계획하지 않고 현장에서 제 두 눈으로 그려냅니다.


Q : 인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진행되나요?
A : 대부분 전통적인 C 프린트인데 이것은 50년 전 처음 대량 생산 방식으로 대중화 되었던 기법입니다. 그 때와 마찬가지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컬러 네거티브를 사용해 컬러 사진으로 인화하는데 오스트리아 비엔나 에서 작업합니다. 그곳에서 나의 프린터인 Rosi 와 함께 모든 이미지 하나하나를 인화하고 마지막 프린트 작업 시에는 항상 옆에 있지요.


Q : 어디에서 사진을 배웠습니까?
A : 15살에 부모님께서 주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항상 미술을 했지만 사진이라는 미디엄을 통해서 라면 내 머리 속에 있는 비젼을 형상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Interlochen Arts Academy 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뉴욕의 Bard College로 진학 했지요. 그곳에서 Stephen Shore 와 Larry Fink 선생에게 사사했습니다. Stephen Shore 선생님은 저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분입니다. 제가 8 x 10 인치 포맷의 카메라를 접하게 된 것도, 컬러를 제대로 알게 된 것도 다 그 분을 통해서 였습니다.


Q : 이력을 보면 Lynn Davis 스튜디오에서 부 매니저로 일했던 적이 있군요. 이 때의 경험이 현재 당신의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A : Lynn Davis 는 제가 작가로서 발전해 나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분이었습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일하기 시작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매주 함께 작업을 도왔고 졸업 후에도 2년간 더 일했습니다. 교과서 외 분야의 사진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지요. Shore 선생님이나 Fink 선생님이나 모두 훌륭한 스승이지만 그 때 저는 여전히 배우는 환경에 있었고 당신도 알고 있듯, 예술이라는 것이 가르쳐 주고 또 배우는 것은 아니잖아요? Shore 와 Fink 선생님들로부터는 사진의 기술을, 이것을 예술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기법과 현실을 Lynn Davis 씨로부터 배웠습니다. 아시겠지만 Lynn Davis는 오래 전 뉴욕의 인물 사진 분야에서 매우 이름이 높은 분이었습니다. Robert Mappelthorpe 나 Peter Hujar와 같은 대가와도 매우 가까웠지요. Mappelthorpe의 사후 작품관리에도 깊이 관여했고요. 그 결과 저는 Mappelthorpe, Hujar 그리고 Lynn Davis의 모든 작품은 물론 다른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인물 사진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Davis 나 Mappelthorpe와 같은 작가들이 일하는 방식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1986년 이후의 Davis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 제가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둘 다 건축물에 매료되고, 또 여행을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요.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그것은 인화하는 그 자체를 매우 중요시 하는 점에서도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흑백으로 작업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일했던 모든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만 그들이 아무리 성공적인 작업을 했더라도 항상 제 스스로 나름대로의 뚜렷한 비전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이 선배들이 해 놓은 것을 본받은 것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Q : 독일 사진학파와 뒤셀도르프의 Bechers 문하에서 배출된 작가들을 좋아하나요?
A : 독일 학파의 거의 모든 작가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컨템포러리 사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 저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들 특유의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했던 것을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Lynn Davis가 했던 것도 따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Stephen Shore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늘 제 고유의 비전을 이룩하려 노력했고 제 자신만의 것을 창조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면 사진을 계속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애초에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Bard 대학교를 선택한 것도 John Ashbery 교수님에게서 배우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도 그분이 저와 제 시에 관심을 가져 줘서 시를 배운 것뿐만 아니라 3년간 그의 조수로 일했습니다. 이 때 Lynn Davis의 일도 겸하고 있었고요. John Ashbery 교수님과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친분을 유지했고 아직도 절친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사진이 예술가로서의 제 의도와 생각을 시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시와 사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Q : 비엔나에서도 살았던데요,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A : Ernst Hilger 갤러리와의 인연 때문입니다. 제가 뒤셀도르프의 한 작은 갤러리를 통해 한 아트 페어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힐거씨가 저의 아프가니스탄 작품을 보고 무척 좋아했지요. 저의 작품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고 알아준 첫 번째 딜러였고 저에게 그 당시 제가 원했던 개인전을 비롯해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곧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미국에서 갤러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에게 모험을 걸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Basel Art Fair 에서 그와 함께 열었던 첫 전시에서 모든 작품이 판매 되었고 그 발판으로 저는 몇몇 중요한 컬렉션에 작품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을 했고 현재는 뉴욕에 있는 Mitchell-Innes & Nash 갤러리와 함께 하고 있는데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번역 이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