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세상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나의 공간은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네모난 프레임의 원거리 매체들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가능해지고, 길을 걷다가도 넘쳐나는 이미지들과 텍스트들에 시선을 빼앗기며 심지어 그것들에 의해 허무하게 하루를 소비하기도 한다. 그런 세상 속에 사는 우리는 귀를 틀어막고, 디지털 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작 발을 내딛고 서 있는 이 주변 풍경에 무뎌졌다. 오늘 바람의 나부끼는 나무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지나가다가 마주친 행인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이 모호한 경계 속 세상에서 근방의 이미지들은 소외되어 버렸다.

내 작업 방식은 해체와 재구성의 반복에서 온다. 주로 마음에 드는 이미지들은 영상으로 찍어 보관을 하고 그것을 참고하여 주로 핸드 드로잉 작업을 한다. 이 때 나는 대상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드로잉을 한다. 예를 들면 분답다 라는 작품에선 돌담을 작업을 할 땐 돌 하나하나를 그린 후 그것을 재구성하여 내 공간 속 돌담을 만들었다. 사람의 경우에도 어느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들어가기도 하지만, 부분 부분 컷 아웃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는 경우 팔, 다리, 몸통 등의 요소요소를 따로 드로잉 한다. 그렇게 재구성함으로서 내 풍경은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형식이 된다.이것은 애니메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프레임들이 재구성된 관계 속에서 처음 드로잉 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 구현된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서사성을 전달하기 위한 일반적인 움직임보다는, 추상화되고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풍경 속 개별의 이미지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행선지가 다르고, 이불이 오늘 그 아파트 베란다의 널려있는 이유가 다르고 가게들마다 불 끄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큰 덩어리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풍경을 오래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작품 속에 반영했다. 첫째로는 작품의 화면은 원경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모두 공평하게 비춰지고 있다. 우리가 풍경을 바라볼 때 어떤 것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지 정하듯이 관객들은 작품의 이미지들 중 선택하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의도치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또, 작품의 이미지들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서,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서로 얽히고 설켜있는 풍경의 사건들을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매일 매일 다른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의 나무의 나부낌이 다르고 나를 스치는 행인들이 달라진다. 이런 것들을 인지하는 일은 항상 내게 새로움을 가져다준다. 나는 내 작업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의 풍경을 소외시켜버린 이 디지털 프레임 안에 움직이는 내 작업을 통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자리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원한다.


윤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