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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샤베르 Zentralformen

로버트 샤베르의 작품은 원(圓)과 빛(光)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초기의 흑색 위주의 짙은 추상화에서 화려하고 강렬한 유화로, 여기에 수십 겹의 글레이즈를 덧입히는 작업방식으로 진화해 나오면서 작가는 줄곧 하나의 개념을 붙들고 확장해 왔습니다. '재료의 물성과 형태가 서로 어떻게 반응하며 하나의 독특한 톤을 만들어낼까'. 이 질문에 몰두하며 해답을 찾기 위해 그리고, 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그리기 위해 그려왔던” 것입니다.

아크릴 물감에 아마씨 기름을 혼합해 광택과 번짐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실험을 반복하던 과정에서 발견한 이리오딘이라는 안료는 작가에게 또 다른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진주의 광택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이리오딘은 자동차 코팅에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는 재료입니다. 이리오딘의 조력으로 작가는 그 독특한 톤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관객은 색과 형태가 서로 밀고 끌어당기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화면에 빨려들어가며 감각이 증폭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샤베르의 최근작들은 ZENTRALFORMEN (Central Form)이라는 주제, 혹은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중심, 원형, 본질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원(圓)을 시각적 지표로 삼아 순환과 반복의 사이클 속에서 무한하게 영속되는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작들에서는 태초의 고요를 연상케 하는 칠흑을 배경으로 폭발하듯 번져나가는 금빛의 파장이 느껴집니다. 무수한 동심원이 겹겹의 층을 쌓아가며 밖으로 멀리 뻗어나가려는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시 중심으로 몰려드는 역동성이 밀물과 썰물의 파도처럼 직적접이고 구체적으로 보는 이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작품의 또 다른 동력은 빛(光)입니다. 원이 색과 형태의 긴장감을 조성한다면 빛은 이를 증폭시킵니다. 정면으로 바라볼 때의 작품은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단단한 심지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관객의 미세한 고개 돌림이나 위치 변화에 따라 빛이 같이 움직이며 색도 변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부동의 작품 안에서 자발적으로 울리는 빛과 색의 협연이라고 할까요.

일찍이 빛을 탐구했던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카라바지오(Caravaggio), 페르미어(Vermeer), 모네(Monet)에 이어 현대의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더그 윌러(Doug Wheeler) 등, 모두 빛의 다양한 속성을 작품에 적용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감상의 폭을 공감각적으로 확대시키는 뚜렷한 특징이 눈에 띕니다. 이 중, 로버트 어윈의 빛에 대한 이해와 응용법은 샤베르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참고가 될 듯합니다. 알루미늄 디스크에 반짝이는 안료를 뿌려 빛의 굴절과 반사를 이용해 작품이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둥둥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60년대의 무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설치미술의 효과를 내며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의 감각과 지각에 딴지를 겁니다. 관객이 지닌 기존의 경험과 기억 속의 색과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공간 안에서의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작가가 상대하는 것은 물리적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의식의 상태와 지각의 형태입니다" 라고 어윈이 말했듯이, 작품과 관객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샤베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작품의 완성은 관객과의 관계(참여) 안에서 지어진다고 믿는 작가의 믿음처럼 무한히 뻗어나가는 원들의 방향 또한 보는 이들만이 헤아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동조

더 컬럼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