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 Kwang-Young - Yonhapnews 200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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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건 도박한다는 각오로 전시 준비">
기사입력 2008-08-01 18:18 |최종수정2008-08-01 22:11


화가 전광영 미.일展 앞두고 '출정' 의지 다져

(용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제 인생을 걸고 도박한다는 각오예요"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결전이라도 앞둔 사람 같다.

삼각 스티로폼을 한자가 새겨 있는 고서 종이로 싼 뒤 이를 하나하나 쌓아 독특한 질감의 작품으로 선보여온 중진 작가 전광영 (64)씨 얘기다.

작업장이 있는 용인 자택에서 1일 기자들을 만난 그는 9-10월 미국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 초대전에 이어 올해 12월부터 내년 5월 코네티컷 얼드리치 현대미술관 개인전, 내년 2-3월 일본 모리미술관 개인전을 앞두고 잔뜩 흥분한 듯했다.

미술 작가라면 한번쯤 전시해보고 싶은 공간들에서 전시가 줄을 잇는다니 그럴만도 하다.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의 경우 장 미셸 바스키아, 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가 거쳐 갔으며 가고시안이나 페이스 갤러리와 어깨를 견줄 만한 정상급 화랑이다.


또 코네티컷에 있는 얼드리치 미술관은 크지는 않지만 생존작가를 위한 미술관으로, 미국내 유명도에서 휘트니나 구겐하임 미술관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미술 애호가인 폴 뉴먼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시 안젤름 키퍼, 솔르윗, 줄리안 오피 등 거장들이 거쳐갔다.

모리 미술관은 도쿄 도심의 건물 52, 53층에 자리잡고 현대미술에 강점을 보여온 미술관으로, 전광영은 한개 층을 다 사용한다.

로버트 밀러 갤러리에는 새로운 작품인 '블루'를 선보인다.

쩍쩍 갈라진 대지나 분화구, 혹은 돌담 같은 질감을 흑백 혹은 누르스름한 색으로 담아온 '집합'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지만 분화구의 색은 일일이 파란 염료로 물들인 한지를 사용해 파랗다.

"황폐한 곳에 희망을 심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또 얼드리치 미술관에는 "우리를 비웃고 질타하는 듯하게" 삐딱한 두상 모양의 입체 작품을, 모리미술관에는 검게 병든 심장을 표현한 입체 작품을 역시 새롭게 선보인다.

그는 새 작품들을 설명하다가 "조그만 체구로 세계 화단에 진입하기 위해 뛰어다니면서 터득한 3가지가 있다"며 화제를 돌렸다.


첫째가 "절대적으로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몰려드는 뉴욕에서 창의적이지 못하면 '5분 스타로 끝나게 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둘째는 관객의 눈을 끌수 있는 조형성이고 셋째는 작가를 지원하는 관리체계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5분 스타가 아니라 50년 스타가 되려면 1-2년 사이로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하고 10년, 20년 똑 같은 작품만 하는 작가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고 목에 힘을 주었다.

블루를 비롯한 새 작품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작가로서는 도박이면서도 용기를 갖고 해야 하는 도전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미국의 메이저 화랑은 오프닝 다음날 후속 전시 얘기를 꺼낸다. 다음에 전화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10년 가도 전화가 오지 않는다. 블루는 그래서 도박하는 입장으로 낸 작품이다."

그는 "목숨 걸고 뛴다"는 표현까지 했다. "차세대 작가들이 우리 세대 처럼 고생하지 않고 넓은 운동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게 작가의 목표다. 한국 예술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을 세계 속에 심어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평탄한 길을 걸어온 작가는 아니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환쟁이'가 되려는 그를 한동안 쳐다 보지 않을 정도였고 홍대 졸업후 미국 필라델피아 대학원에서 유학까지 했지만 40대 초반까지도 국내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약 봉지에 착안해 시도한 요즘 유형의 작품이 1995년 미국의 아트페어에서 모두 팔리면서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현재는 그의 작품이 수억원을 호가하면서 경제적인 안정은 찾은 상태다.

그러나 그에게는 '돈'이 아닌 예술가의 '작품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듯해 보인다. 세계로 나가려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도전의지를 갈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6년대 시카고 아트페어에 나갔을 때 장샤오강의 작품은 1만3천달러로 내 작품 값에 못 미쳤지만 그의 전시공간은 파리가 날릴 정도로 인기가 없었어요. 현재 중국 예술의 인기는 중국 정부와 언론, 지원체계 등의 힘도 작용했기 때문이에요."

돈만 벌려는 갤러리와 작가의 관계 등 국내 시스템에 대한 볼멘 소리도 나왔다. 그는 최근 국내 전속 화랑을 '더 컬럼스갤러리'로 옮긴 이유에 대해서도 "화랑주인 장동조 대표가 국제적인 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먼저 우리 판을 벌려야 외국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왜 중국 미술 기사를 그렇게 많이 다루나요. 우리의 미술이 작품성 측면에서 일본보다 국제 진출이 더 용이할 겁니다. 블루칩이니 뭐니 가격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와줘야 해요."

(사진설명 = 새 작품인 '블루'계열과 두상 및 검게 병든 심장을 표현한 입체물을 설명중인 전광영. 또 다른 블루 계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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