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컬럼스대표 장동조 - Heren 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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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쩍 벌어지는 작품들로 채워진 컬렉터들의 집을 엿보는 것보다 때론 그 뒤에 숨어있는 화상들의 머릿속을 엿보는 일이 더 흥미진진하다. 그 어떤 이코노미스트들이나 지략가보다 섬세한 노하우를 지닌 ‘아트 딜러’들의 분주함이 없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인 ‘미술시장’은 순식간에 장을 마감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이들을 통하고, 또 컬렉터들은 사랑하는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 이들과 교분을 쌓는다. ‘위대한 작가와 컬렉터 뒤에는 위대한 화상이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니 아트 딜러들만큼 즐겁게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

1990년대, 현대미술시장의 진원지인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다 한국으로 귀국해 ‘더 컬럼스 갤러리’를 오픈한 장동조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더 흥미로운 이야기 상대다. 다니엘레 부에티, 토마스 엘러, 빌 톰슨, 마이클 웨슬리 등 현대미술의 떠오르는 스타들의 작품이 그의 갤러리를 통해 한국 컬렉터들의 품에 안겼고, 현재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대작가이자 세계적인 블루칩으로 꼽히는 전광영의 작품도 그와의 오랜 신뢰 관계를 통해서 세계로 뻗어 나갔다. 무명의 갤러리스트에 불과한 장동조에게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건, 당연하게도 아티스트들의 치기 어린 모험이 아닌, 그가 쌓아온 오랜 신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호림박물관 지하에 새로이 터를 잡은 ‘더 컬럼스 갤러리’의 재개관전 <글로벌 아트 쇼 Global Art Show>는 어쩌면 그가 오랜 세월 미술세계와 교류해온 실적(!)을 낱낱이 증언하는, 아트 딜러 장동조의 거대한 포트폴리오이자 성적표에 다름 아니다.

‘아마 이번 전시가 제 평생의 가장 큰 전시가 되지 않을까요. 평생 이렇게 큰 작품들을 소개했었던 적은 없어요. 여기 전시된 앤디 워홀의 ‘Flower’는 소나밴드(앤디 워홀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뉴욕의 전설적인 화상 레오 카스텔리의 이름) 갤러리가 파리에서 앤디 워홀의 첫 전시를 열었을 때 선보였던 9점 중의 한 점이라 매우 귀한 작품이고, 옆에 있는 웨슬만의 ‘Smoke Study’도 팝아트의 첨병이었던 뉴욕의 시드니 제니스 화랑에서 첫 선을 보였던 역사적인 작품이에요. 데미안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은 제 소장품이고요. 다양한 연작들이 있지만 이 작품이 더 독특하고 의미 있는 건 바로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이 나오기 바로 전 날 발표된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제작해서 이 작품은 수술용 칼, 골드 더스트로 덮혀 있어요. 이례적으로 실물을 보지도 않고 구입을 결정했을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 중 하나죠”

이렇듯 그와 재미있는 인연으로 맺어진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부터,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스 해링과 프랑크 스텔라의 설치작품,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실크스크린 작품인 ‘Swim’까지 최근 50년간 현대미술사의 정점을 차지한 작품들이 더 컬럼스 갤러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조금이나마 이 작품들에 깃든 노고와 이야기, 그리고 논란의 나이테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 전시가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풍경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에서 갤러리를 오픈할 때처럼 이번 전시 역시 주변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세계적 갤러리, 작가들의 대여, 제 개인 소장품이 섞여 있고,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인 작품들도 있어요.” 사실 그가 뉴욕에서 갤러리를 열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많은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갤러리를 했었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배경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컬렉터도 아니고, 당시로서는 딜러도 아니었고, 단지 미술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한 사람이었죠. 좋은 전시가 열리면 빠짐없이 쫓아다니고, 수년을 그렇게하다보니 오프닝 파티에서 컬렉터나 아티스트들도 만나고 화랑주인들과도 친분이 생겼죠. 갤러리를 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꾸준히 이런 경험이 축적돼서 한 점 한 점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주변의 지인들이 ‘네가 화랑을 연다면 내가 컬렉션에 도움을 주겠다’, ‘내 작품을 한 점 내주겠다’고 조금씩 도와줘서 갤러리를 열 수 있었죠.” 이렇게 거짓말 같이 그는 제프 쿤스나 아르망 같은 작가들과 친구가 됐고 팝아트 계열의 환경 조각가인 조지 시걸 전으로 첫 전시를 열 수 있게 됐다.

“제 화랑 건너편에 전설적인 아트 딜러 레오 카스텔리의 화랑이 있었어요. 그는 1957년 화랑을 오픈한 이래,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현대미술의 초대형 스타들을 발굴해 키워낸 사람이죠. 또 지금은 첼시로 이전했지만 조안 미첼, 로버트 메이플소프, 루이스 부르주아 등이 소속된 ‘로버트 밀러 갤러리(세계 10대 화랑 중 하나로 꼽힘)’도 지척에 있었지요. 메리 분 갤러리도 옆에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이탈리아 화랑인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도 있었죠.”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그는 한 가운데에서 세계적인 거물들과 교류하며, 딜러로서의 철학을 체득했다. “레오 카스텔리 같은 딜러는 그가 후원하는 작가들과 당대를 함께 살다가 죽었어요. 서로 믿음을 가지고 삶의 한 부분이 되었던 거죠. 이들에게 작품, 작가, 갤러리는 따로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니었어요. 뉴욕의 메리 분이나 레오 카스텔리 같은 위대한 화상들을 보고 느낀 건 바로 그거예요. 저의 원칙 중 하나가 절대 대관을 하거나 한 작가의 전시를 일회성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갤러리는 평생 프로모션이라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작가들과 평생지기가 되어야 하죠,” 실제로 많은 이들이 마이클 웨슬리의 섬세하게 흔들리는 꽃 사진을 보거나 전광영의 숨이 멎을 듯한 대작을 마주할 때, 다니엘레 부에티의 위트있는 작품을 만날 때 ‘더 컬럼스 갤러리’의 이름을 떠올린다. 이렇듯 반사적으로 작품과 갤러리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온 그의 아트 비즈니스는 이 땅에서 하나의 의미있는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재주는 있지만 이름 없는 화가, 안목은 있지만 길을 모르는 컬렉터, 그들의 평생의 짝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가 평생을 바쳐 하고자 하는 일이다. “경험상 ‘이 작품은 이 컬렉터에게 딱 맞겠다’라는 확신 없이 작품을 판매하게 되는 경우에는 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그런 교훈 때문에 저는 손해를 보더라도 작품에 시간을 줍니다. 마치 아이를 입양 보내거나 시집 보내는 것처럼 미술작품도 딱 맞는 환경에 가지 못하는 경우엔 빛을 보지 못하지요.”

‘글로벌 아트 쇼’라고 명명한 이번 전시의 부제를 그는 ‘Welcome Always’라 이름 붙였다. 스타킹과 먹다버린 술병이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침대를 과감히 화이트 큐브로 옮겨간 영국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그는 한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보편적인 힘을 얻어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트레이시 에민처럼, 앞으로 그가 선보일 작품들이 문화와 정서를 뛰어넘어 생명력을 획득하길 바란다. 새로운 전시를 열 때마다 손수 전시 소개의 서문을 쓰는 독특한 갤러리스트, 예술 애호가로서의 열정을 뼛속 깊이 품고, 작가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나가는 장동조 대표는 어쩌면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화상’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HEREN 2010년 5월호
Editor 박지혜 Photographer 이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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